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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공부하기

아인슈패너 커피에 빠지다

by 청년시인 바리스타 202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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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 나라별로 저마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됩니다. 오스트리아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것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커피 역사를 얘기할 때 '게오르그 콜쉬츠키(Georg Kolschitzky)'란 사람을 빼놓을 수 없지요. 그는 폴란드인으로 투르크의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비엔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오스만투르크제국(1299~1922)은 십자군 전쟁으로 힘을 잃은 같은 이슬람 나라 사라센 제국을 물리치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나라였습니다. 16세기에 들어 유럽과의 전쟁에서 연승하며 17세기 말엔 헝가리까지 점령하고 1683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침공하기에 이릅니다.

 

여러 가지 정서상 오스트리아까지 침공하리라곤 생각을 못했던 지라 쉽게 대부분의 영토를 넘겨주고 비엔나는 투르쿤군에 포위됩니다비엔나는 투르크 군대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독일 남부에 주둔하고 있는 연합군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했고 그 임무를 콜쉬츠키가 맡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그가 포위망을 뚫는 과정에서 투르크군에 붙잡히는 등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투르크인의 복장과 유창한 투르크어 덕분에 투르크 사령관에게 되려 커피를 얻어먹고 무사히 투르크 진영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패너(일명 비엔나커피)

 

결국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비엔나는 20만 대군의 투르크를 물리쳤고, 급하게 퇴각한 투르크군은 유럽인들에게 생소한 수많은 전리품을 남겼습니다. 그 중 커피 원두500포대도 있었지만, 유럽인들에겐 또 다른 무용지물인 낙타가 먹는 사료 정도로 생각하고 별 쓸모가 없겠다고 판단한 비엔나 시민들은 커피 콩이 담긴 자루를 불태우던 차에 "맙소사, 그건 커피란 말입니다! 내가 그걸 사용할 줄 알아요!"라고!" 콜쉬츠키가 소리를 칩니다. 그들 중 커피의 가치를 알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죠.

 

콜쉬츠키는 비엔나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커피를 본인이 유용하게 사용하겠다고 요청했고, 승리의 큰 도움을 준 그의 요구를 비엔나는 거부할 수 없었지요. 그는 이 커피 원두를 이용하여 비엔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설립하며 인생을 역전합니다. 이후 비엔나는 커피하우스가 곳곳에 세워지며 비즈니스의 상당 부분이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시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할 정도로 커피하우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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